[여행일기] 1월 27일 | 레

旅/겨울 라다크(2019) 2019. 1. 31. 23:53


갸쪼와 10시에 만나기로 약속해서 10시에 체크아웃을 했다. 아주머니가 어디로 옮기냬서 이름은 잘 생각 안 나고 메인 마켓 근처에 있는 곳이라고 했다. 사실 이곳이 추워서이기도 하지만, 창스파 로드의 가게들이 다 닫아서 옮기고 싶은 것도 있었다. 창스파 로드는 주로 외국인 관광객을 타겟으로 장사하기 때문에 시즌이 지나면 다들 문을 닫고 다른 도시로 떠난다. 대부분의 네팔리와 인디안들은 고아와 같은 따뜻한 남쪽으로, 카슈미리들은 스리나가르로 간다고 한다. 주인 아주머니가 겨울에 자주 안 오는 손님인데 놓치는게 아쉬웠는지 나보고 숙소비로 얼마 내냐고 물어봐서 가격 말 하고 그곳은 히터도 있다고 했다. 그러더니 나보고 200루피 더 내면 히터를 주겠다고 했다. 갑자기 얄미워서 이곳에는 다시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 그럼 처음부터 있다고 하던지... 내가 히터 있냐니까 없다고 해놓고 이제와서 돈 주면 히터 넣어준다는 건 무슨 심보? 어쨌든 왓챕으로 갸쪼가 10시쯤에 메시지 왔길래 나왔는데 거리는 황-량- 마침 그 시간에 왕축이가 나와있어서 나보고 뭐 하냐고 그러길래 친구 기다린다고 했다. 갸쪼를 기다리길 30분 째, 전날 묵었던 숙소 아주머니가 나오셨다. 그러더니 친구 안 왔냐고, 안 오면 자기 숙소에서 자라고 해서 친구 좀 늦는다고 곧 온다고 했다. 그리고 겨우 온 갸쪼!!! 늦으면 늦는다고 말해줘야 내가 시간 조정해서 나오지 이눔!!! 사실 갸쪼가 따시와 함께 차 타고 등장할 줄 알았는데 털레털레 혼자 걸어왔다. 갸쪼는 운전면허도 운전도 할 줄 모르는 남자이니까 셰이에서 버스를 타고 레까지 와주었다. 처음엔 이럴거면 차로 데려다 준다던 왕축한테 부탁할 걸 그랬나 싶었는데 생각해보면 나 덕분에 이렇게 여기까지 와서 짐도 들어주는게 너무 고마웠다. 지름길이라면서 자꾸 골목길로 데려가는데 사실 고마우면서도 힘들어서 꿀밤 때리고 싶었다. 고도 적응 못 해서 빨리 걷지도 못하는데 자꾸 혼자 성큼성큼 가서 힘들어 죽을뻔 했다. 슬로우 다운! 외쳤더니 나름 천천히 걸어주었는데, 키가 187cm이라 그런지 그래도 빨랐다. 가면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내일 모레라고 했던 아이스하키 경기가 오늘이라는 것이다. 아이스하키 경기 시작 시간은 11시. 당시 시각 거의 11시. 숙소에 도착해 짐을 놓고 네이버에서 연락처를 주고 받은 한국분 방 번호를 주인 아주머니께 전달받아 방을 두드리고는 "안녕하세요. 아이스하키 경기가 내일이 아니라 오늘이래요. 가실래요?"했더니 이분께서 "네!"하시곤 굉장히 빨리 준비하고 나와주셨다. 실천력 칭찬해...! 첫 만남에 실례를 범(?)한 것 같아 죄송했다. 아이스하키 경기를 보려면 촉람사르 가는 길에 있는 경기장에 가야하는데 촉람사르에 가려면 버스를 타야했다. 갸쪼가 우리를 버스 스탠드로 안내하는데 도저히 버스 스탠드가 어딘지 보이지 않았다. 마을 초입까지 가서 버스를 타고 경기장으로 향했다. 라다키인들로만 가득한 버스에 동북아인(???) 두 명이 타니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경기장에 도착하니 어디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였는지 모를 정도로 많은 라다크인들이 모여있었다. 사실 난 하키에 별로 관심이 없고 유일하게 본 경기라곤 작년 평창 올림픽 때 일하면서 본 경기밖에 없었다. 사실 그때도 경기를 봤다기 보다는 경기를 빌미로 맥주를 마신 것이었지만. 경기에 참여하는 팀은 경찰팀과 군대팀이었는데, 갸쪼는 군대팀을 응원한다고 했다. 이유는 아버지가 군인이었어서! 라다크는 파키스탄,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분쟁이 현재진행형인 곳이라서 라다크에는 군부대가 세 곳이나 있다. 누브라 쪽에 하나, 판공초 쪽에 하나, 시내에 하나. 시내쪽 군대는 주로 지령을 내리는 메인 본부? 같은 곳이라고 했다. 이런 상황때문에 라다크에서 누브라 밸리나 판공초에 가려면 특별한 관광 퍼밋이 필요하고, 중국, 파키스탄인, 미얀마인들은 이 퍼밋을 받을 수 없고, 이곳에 갈 수도 없다고 했다. 이전에는 방글라데시인들도 갈 수 없었으나, 언제부터인지 허가가 떨어졌다고 했다. 미얀마인들이 왜 못 가는지는 아마 뭔가 내부 문제가 있을거라며, 갸쪼도 모른다고 했다. 스코어 판도 특별한 시설도 없는, 그냥 얼음판 밖에 없는 아이스하키장이었지만 사람들의 열기는 뜨거웠다. 라다키들이 이렇게 큰 소리도 낼 수 있었나?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역시 라다크니까 경기장 근처에 비어보이도 비어스탠드도 없었지만 차이스탠드는 있었다... 스코어 판은 없지만 점수를 아는 옆 사람은 있다. 히말라야를 등지고 펼쳐지는 아이스하키 경기가 너무 멋있었고, 응원 구경도 재밌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갸쪼가 응원하는 군인팀이 지고 경찰팀이 다음 토너먼트에 올라갔다. 그래서 그런지 갸쪼의 표정이 슬퍼보였다. 경기가 끝난 뒤 짜이 한 잔을 하고 레에 가는 버스를 탔다. 굽이굽이 골목길을 지나 다르질링이라는 뚝바집에 가서 믹스뚝바를 먹었는데 안에 들어간 모모와 진한 양고기가 너무 맛있었다. 그 다음 차 한 잔 하러 가는데 한국분이 얼마 전 길거리에서 만난 일본인을 만나 다 같이 갸쪼네 오피스로 향했다. 메인 마켓에 위치한 이 오피스는 메인 마켓 최고의 테라스였다! 메인 마켓의 채소 가게를 위에서 내려다보는게 너무 좋았다. 가혹한 히말라야의 겨울에는 땅 속의 구황작물이 전부다. 그린하우스를 만들 법도 하지만, 전기가 자주 끊기는 라다크에서는 어려울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라다크 사람들은 인공적인 환경에서 자란 초록빛 채소는 영양분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정말 그런지 궁금해졌다. 어쨌든 다 같이 차를 마시고 수다를 떨다가 일본인은 차다트렉 수업이 있어서 먼저 떠났다. 우리끼리 연이어 수다 떠는데 한국분께서 직업이 댄서라 하니 갸쪼가 자기 댄서 친구를 부르겠다며 기다리자고 했다. 하지만 기다려도 기다려도 오지 않는 우리 댄서 친구. 기다리다가 며칠 후 잠무로 출장가는 갸쪼의 티켓을 찾으러 갔다. 한 벽면에는 달라이라마 사진이, 한 벽면에는 파륜궁 포스터가 붙어있는 모습이 묘했다. 티켓을 픽업하고 가는 길, 드디어 댄서 친구 파드마를 만났다. 파드마의 안내로 티벳 몰 근처에 위치한 스튜디오로 향했다. 나는 막춤러, 갸쪼에게 춤은 불교 의식에서만 추는 것이기에(???) 우리는 뒤에 멀찌감치 서서 구경했는데 한국 댄서분께서 정지해있는 조차 춤의 일부라고 했다. 갸쪼랑 "우리 지금도 춤을 추고 있는거야…!" 하고 실없이 웃었다. 한국 댄서분께서 고도가 높다보니 춤 추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하셨다. 프리스타일 댄스 세션이 끝나고 일명 템플(!)로 불리는 와인 샵에 갔다. 생각해보니 저번 라다크 방문 때는 인도에서 술 마시는게 두려워 식당에서 맥주 한 병 정도 마시는 걸 제외하곤 거의 알콜프리로 지냈다. 그나저나 와인샵이 라다크 불교 협회 옆에 있는 것이 굉장히 묘했다. 라다크에서 술을 팔기 위해서는 불교 협회의 허락을 받아야 하고, 추가로 세금?같은 것을 내야한다고 했다. 지역 사회의 규칙이 우선시 되는 이 현상이 아직도 조금은 낯설다. 맥주 두 병과 마하슈트라주에서 생산되는 술라라는 와인을 한 병 사서 돌아왔다. 물론 레드 말고 화이트로! 파드마랑 갸쪼가 게스트하우스까지 데려다 줘서 너무 고마웠다. 착한 라다크 친구들! 방에 짐을 놓고 거실로 와서 술을 한 잔 했다. 셰닌 블랑의 술라 와인은 동치미 맛이 났다... 뭔가 내추럴 와인같은 맛이 나기도 하고(?) 역시 라다크 문화에서 여자가 술을 마시는 모양새가 좀 이상한지, 내가 술을 마시고 있으니 카르길에서 온 모하메드(이름이 어려워서 못 외움)와 아말레 아발레의 눈빛이 탐탁치 못해 보였다. 수다를 떨고 있으니 밥을 주셨다. 이곳의 집밥은 매우 소박하다. 한국에서 탄수화물을 최대로 절제해 먹던 나의 식단과는 전혀 반대인, 고봉밥에 소박한 커리같은 것이 얹어져 나왔다. 너무 밥을 많이 주셔서 남겨버렸다. 밥을 먹는 도중 전기가 끊겼는데, 아발레가 나가시더니 발전기를 돌리셨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전기가 돌아왔다. 배도 부르고 피곤해서 자러 가는 길에 히터를 달라고 했다. 분명히 오전에 큰 히터를 본 것 같은데... 내 방에 들어온 히터는 터무니없이 작았다. 사실 틀어도 뭐가 따뜻한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낫겠지 하고 틀어놨는데 11시면 전기가 끊긴다. 히터의 존재가 무의미해졌다... 밤이 되면 영하 30도로 떨어진다는데, 사실 진짜인지는 모르겠다. 해가 떠있을 때는 솔직히 안 추운데 애들이 자꾸 영하 20도라고 한다. 시베리아에서 영하 20도를 겪어본 내 경험상, 여기는 그렇게 춥지 않다. 기온을 확인하고 싶지만 아이폰 날씨는 먹통이고 와이파이는 방에서 연결도 잘 안 된다. 메구리즘을 끼고 얼굴을 침낭 속으로 밀어 넣고 잠을 청한다. 잉코 히터가 은근히 따뜻해서 너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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