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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日리 2013. 7. 21. 07:58



2012년 2월 8일, 오늘로부터 530일 전. 모스크바에서 첫 날.


나의 러시아 여행을 기억해보면 나는 용감했거나 무식했다.

러시아 여행에 대한 사전 정보 하나 없이(한국어로 된 가이드북은 진짜 다 최악이였어!) 

단순히 마트료시카가 좋아서, 폴란드에 가는 길에 공짜로 경유할 수가 있어서(물론 비자는 발급 받았다. 배보다 배꼽이 크다!) 

계획적이면서 충동적인 여행을 감행했던 모스크바.


당연히 부모님은 반대하실 것이 뻔해 나 혼자 계획하고 비행기 변경하고 비자 받고 결정한 모스크바 여행.


인천에서 9시간을 날아 도착한 모스크바 쉐르미찌보 공항. 

탁씨의 유혹을 물리치고(사실은 탈 수가 없었음. У меня нет денег...)

아에로익스프레스를 타고 도착한 벨라루스까야 역에서 디마의 부탁으로 영하 20도의 추운 모스크바의 밤에 

쌩판 모르는 사이인 나를 몇시간이나 기다려주고 추운데 모자 왜 안 썼냐며 자기 모자까지 벗어주던 안드레이.

안드레이의 안내로 디마네 집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허기를 채우자마자


"뭐 보고싶어?"

"엠게우의 야경!"


그리고 곧바로 디마가 모는 차를 타고서 본 엠게우의 야경.

도착하자마자 디마에게 물었다


"예쁘다가 러시아어로 뭐야?"

"끄라시바!"

"진짜 예쁘다, 끄라시바!"


너무 웅장하고 멋있어서 입이 다물어지지가 않더라.

하긴 내가 태어나서 처음 가본 아시아가 아닌 곳이니까 더 감동을 받았던 것 같다.


이 순간부터 러시아어를 배워볼까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붉은 광장에서 바실리 성당을 보고

영하 25도의 모스크바의 겨울의 추위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웠던 끄레믈의 가운데서

나와 서투른 영어지만 대화를 어떻게든 이어가려고 노력해주신 디마 어머님과 제대로 이야기 해보고 싶어서

그리고 후에 했던 우크라이나, 아르메니아, 그루지야 구소련 지방에서의 여행과 

슬라브어권에서의 즐거운 기억들 때문인지,

아니면 유럽연합에 대해서 공부를 하기 싫었던 건지, 스페인어가 싫었던 건지...

결국에는 이중전공을 러시아학과로 바꿨다.

 

중간에 이중전공을 바꾸다보니 이전에 들었던 스페인어 6학점은 한마디로 쓰레기통 行.

모자른 학점 때문에 알파벳을 배우면서 2학년 작문수업과 회화수업을 병행했다.

회화 첫 수업시간에 "방학에 뭐 했니?" "일 했니 쉬었니?"를 못 알아들어서 완전 당황하고

뜻도 모르면서 눈치껏 과거변형만 해서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대답해서 다행;;;

 

게다가 저번 학기 시간표가 아주 정말 너무 거지같았는데, 

다시 봐도 대학교 갓 입학한 1학년이 수강신청 망해도 안 나올 시간표의 모습이었다.

주 5일 수업, 1교시 3번(학교 멀리 다니는 나에게 이것은 아주 고역임.), 

1278(즉, 3456교시, 4시간동안 공강...),

한 수업 들으러 학교 오기(이것 또한 학교를 멀리 다니는 나의 잘못이오.), 123456 3연강...

20학점을 다 2학점 수업으로 채운 덕분에(그 중 러시아어는 16학점) 

수업을 10개나 들어야해서 이렇게 시간표가 이상해져 버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2학년 러시아어 작문과 회화 수업에도 그럭저럭 적응해서 

대답도 하는 수준까지 레벨업(!)하고

4학년 러시아 정치 경제 수업도 겨우겨우 잘 따라가고 그럭저럭 잘 적응했던 것 같다.

하지만 걱정과는 달리, 성적이 너무 잘 나왔고 

심지어 내가 다닌 5학기 중에 제일 좋은 성적이 나오기까지 하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학교 성적 장학금도 받았다!

한학기 내내 친구도 못 만나고 놀지도 못하고 공부만 한 보람이 바로 여기서 나오는가보다ㅠㅠ

 

솔직히 장학금 공지 보고 눈물 찔끔했다. 

물론 전액 장학금도 아니고 누구에게는 장학금받는 것이 별로 큰 일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나같이 게으르고 집중 못하고 노는 거 좋아하는 애가

놀지도 못하고 한학기 내내 학교 집 학교 집, 잠은 이동중에 버스에서, 

sleep is for the weak!!! 제대로 실천하면서

4개월이나 산 보답을 얻은 것 같아 너어어어무 기뻤다.

 

다음 학기 러시아어 17학점이 몰아칠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무섭고 겁나고

지금 이렇게 하고싶은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없다는 걸 생각하면 아쉽기도 하지만 

러시아어 수업이 생각보다 많이 그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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